행주기씨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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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자리를 따라가본 기씨의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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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13회 작성일 01-12-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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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계화 도시화 되어 여러 종인들이 흩어져 살며 기씨는 서울에 대략 1600가구 경기,인천 지역에 1500가구 전남,광주에 1300여가구들이 살아서 크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울,인천과 서울의 위성도시에 몰려사시는 분들은 대개는 해방후의 도시화에 의해 본인 이나 아버지때 이주하신분들이다.이분들의 고향을 할아버지이상 윗대를 따라가면서 사시던 곳을 추청해보고 고향이 어디인가를 알때 역으로 조상을 추정할수있게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조상들 이시기 때문에 최소한 공(公)이란 경칭을 붙여야 하겠지만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 조상님들 께서는 이름을 불리워 지기위해 만드신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서 만드시고 불리워 지기 위한 이름은 따로 호(號)를 만드셨지만 지금은 그 둘을 구분할 필요도 없고 모든 이름은 참판공 덕산공 승지공 등등 아는 사람만 아는 두루뭉실한 표현보다는 이름은 이름으로 불리워 지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상님들을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진짜 이름으로 좀 더 가까와 지고 친근해지고 싶을 뿐이다. 모두 우리 기씨이기 때문에 성을 꼭 함께 쓸 필요는 없었지만 꼭 같이 썻다, 족보를 보다 보면 어디까지가 이름이고 어디까지가 호이고 어디까지가 관직인지 분간하는 데 한참이 걸리기 때문에 성을 함깨써서 이름을 명확히 하기위해서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6년(AD;8년) 겨울 10월 기록을 보면 [(온조)왕이 군사를 출동하여 겉으로는 사냥한다 핑계대고 몰래 마한을 습격하여 드디어 그 나라를 합병하였으나 오직 원산 금현 두 성은 굳게 지키고 항복하지 않았다. 온조왕 27년(AD;9년) 여름 4월 원산 금현 두 성이 항복하므로 그 백성을 한산의 북쪽으로 옮기니 마한이 드디어 망하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이 한산은 분명히 서울부근의 한강유역이고 이북은 당연히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일대의 행주지방이다.
그이후 우리 조상님들은 죽 그곳에서 사신듯하다.
중시조 66세 기순우(純祐)의 증손자 69세 기겸(謙)의 둘째아들 70세 기유(裕)의 현손 74세 기삼동(三同)의 후손은 경기도 안산 ,용인 지역에 산다.
74세 기삼동의 아들 75세 기설(洩)의 세째아들 76세 기춘년(春年)의 10세손자 85세(74세 기삼동과 족보기록상 77세 기효복(孝福)은 증조부와 증손자 사이인 것으로 나오지만 그뒤의 주석엔 실제론 그사이에 2~3세대의 세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 할수없다 했으니 아마도 87세나 88세가 맞을 듯 하다) 기영목(永목)과 기후길(后吉)의 후손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 산다.
69세 기겸의 세째아들이며 70세 기유의 동생 기절(節)의 세째손자 72세 기현(顯)은 개성에 사셨으며 신돈이 머물기도 하였다.기현의 아들 다섯의 후손이 남북에 흩어져 산다.
먼저 .그 큰아들 73세 기중평(仲平)은 조선 개국과 함께 처음 조선왕조에 들어오셔서 서울로 옮겨 사셨다, 그손자 75세 기건(虔)은 서울 청파 만리현에 사셔서 그분의 호를 따서 오늘날의 청파동 이름이 생겼다.75세 기건의 아들 76세 기축(軸) 손자 77세 기찬(衣+贊)까지는 서울에 사셨다. 77세 기찬의 다섯아들이 모두 흩어졌다.큰아들 78세 기형(逈), 손자 79세 기대복(大復)은 모두 서을에 살았다.79세 기대복의 둘째아들 80세 기령(艸+令)의 큰아들 81세 기홍헌(弘獻)의 후손은 경기도 김포군 향산리 일대에 산다, 기령의 둘째아들 81세 기수(壽)의 후손은 전남 나주일대에 산다. 79세 기대복의 세째 아들 80세 기훈(薰)의 후손은 경기도 수원 화성일대에 산다.
77세 기찬의 둘째아들 기원(遠)은 막내동생 기준(遵)이 기묘사화로 죽자 넷째동생 기진(進)과 아들 삼형제를 대리고 호남의장성으로 이주하야 그이듬해에 돌아가시고 후손은 장성일대에 번성한다. 78세 기원의 후손중에 기원의 손자 80세 기효근(孝謹)의 후손중에서 일부는 전남 무안, 영광일대에 산다.
80세 기효근의 증손자 83세 기진웅(震雄)은 77세 기찬의 다섯째 아들 기준의 현손자 82세 기수발(秀發)에게 양자를 갔는데 기진웅의 증손자 중에서 86세 기성휘(聖輝)는 다시 기찬의 첫째아들 기형의 손자 80세 기령의 6세손 85세 기원규(元圭)에게 양자가서 그 후손이 강원도 춘천일대에 산다.
77세 기찬의 세째아들 78세 기괄(适)의 묘는 포천에 있다 그러나 큰아들 79세 기대관(大觀)의 아들 80세 기경중(敬中)의 큰아들 81세 기민헌(敏獻)의 세째아들 82세 기업(心+業)의 후손은 충북 충주와 중원일대에 산다, 기업의 동생 82세 기열(悅)의 후손은 경기도 평택과 충남 아산등지에 산다. 80세 기경중의 세째아들 81세 기웅헌(雄獻)의 후손은 경북 경주,상주,월성,가창일대에 산다.78세 기괄의 둘째아들 79세 기대정(大鼎)의 후손은 경기도 평택일대에 산다. 79세 기대정의 둘째 아들 80세 기경례(敬禮)의 둘째 손자 82세 기보국(輔國)의 둘째아들 83세 기준립(俊立)의 후손은 전북 진안 지역에 산다.80세 기경례의 세째손자 기보현(輔賢)의 후손은 전북 진안,전주,임실 등지에 산다.
77세 기찬의 넷째아들 78세 기진(進)은 막네동생 기준이 기묘사화로 죽자 둘째형 기원 가족과 함께 호남의 용동마을로 내려와 후손이 번성하였다.
78세 기진의 큰아들 79세 기대림(大臨)의 후손은 광주일대에 산다.78세 기진의 둘째아들 79세 기대승(大升)의 후손은 형 79세 기대림의 손자 81세 기방헌(邦獻)의 넷째아들 82세 기원(瑗)을 기대승의 큰아들 80세 기효증(孝曾)의 아들 81세 기정헌(廷獻)의 아들로 들여서 가문의 대를 잇고 후손은 광주시 광산등지에 산다.81세 기정헌의 직계는 전남 나주일대에 미약하게 살고있다.79세 기대승의 둘째아들 80세 기효민(孝閔)의 큰아들 81세 기령헌(齡獻)은 정유재란을 피해 경북 성주로 이주하여 후손은 경북 고령 나정일대에 산다. 80세 기효민의 둘째아들 81세 기동헌(東獻)은 정유재란을 피해 경기도 파주군 장단으로 피난하여 후손은 장단일대에 산다, 이로보면 호남에 사시며 고봉 기대승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진 분들은 실제로는 나주에 조금 살고있는 분들외에는 모두 고봉선생의 형 기대림의 후손이다, 83세 기원의 후손 중에서 85세 기언섭(彦燮)의 아들 86세 기학기(學祈)는 영남의 김해로 이주하여 후손이 김해일대에 산다. 86세 기학신(學愼)의 후손은 경북 예천 문경 상주일대에 산다.
77세 기찬의 다섯째아들 78세 기준(遵)과 손자 80세 기응세(應世)의 큰아들 81세 기자헌(自獻까지는 서울 서대문에 사셨다.81세 기자헌과 동생 기윤헌(允獻)이 이괄의 난때 4촌 기익헌(益獻)이 이괄의 부하였던 관계로 내통을 염려한 인조에게 죽고 자식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기자헌의 큰아들 82세 기준격(俊格)의 큰아들 손자 큰증손자 85세 기한익(漢益)까지는 전남 보성에 살았고 현손 86세 기진삼(震三) 이후엔 전남 순천과 그 인근지역 구례,신태인,장성, 경남 하동,사천 일대에 흩어져 산다. 82세 기준격의 둘째 증손자이며 86세 기진삼의 작은아버지 85세 기한창(漢昌)의 후손은 경남 함양, 거창 전북 무주일대에 산다.81세 기자헌의 들째아들 82세 기순격(順格)의 후손은 전남 영광,전북 부안일대에 산다. 81세 기자헌의 아들 82세 기신격(愼格)은 처음으로 함경북도 길주로 옮겨 후손들이 길주,명천지역에 산다, 아버지 기자헌이 인목대비의 폐비를 반대하다가 길주로 귀양갔던 것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81세 기자헌의 아들 82세 기민격(敏格)의 후손은 충남 서산일대에 산다. 80세 기응세의 둘째아들 81세 기윤헌의 아들 82세 기수실(秀實)은 처음 전남 해남으로 이주하였다가 후손들이 다시 전남 무안일대로 옮겨 산다.80세 기응세의 세째아들 81세 기통헌(通獻)의 후손은 경북 경주, 경남 울산일대에 산다.
76세 기축의 네째 아들 77세 기주(衣+周)의 후손은 전북 무주,진안 일대에 산다. 76세 기축의 다섯째 아들 기정(依+貞)의 후손은 전남 고흥, 보성일대에 산다.
두번째, 72세 기현의 둘째아들은 자식이 없고 세째아들 73세 기중민(仲敏)의 큰아들 74세 기숭(崇)의 큰아들 75세 기령(逞)의 후손은 황해남도 재령군일대에 산다. 74세 기숭의 둘째아들 75세 기정(廷)의 아들 76세 기한수(漢守)의 큰아들 77세 기효실(孝實)의 첫째아들 78세 기준(俊)의 큰아들 79세 기수팽(壽彭)의 증손 82세 기여접(汝楫)의 후손은 강원도 원주,정선 충북 단양, 중원등지에 산다.78세 기준의 세째아들 79세 기수억(壽億)의 후손은 재령부근에 산다. 77세 기효실의 둘째아들 78세 기정(人+廷)의 큰아들 79세 기수장(壽長)의 후손은 경기도 파주시 교하지역에 산다. 78세 기정의 들째아들 79세 기평장(平長)의 6세손 84세 기초선(初善)이 난을 피해 평안남도 성천군 사가면일대로 이주하여 후손이 성천에 산다. 77세 기효실의 세째아들 78세 기칭(稱)의 증손자 81세 기원보(元輔)의 손자 83세 기덕인(德仁)의 둘째아들 84세 기한(瀚)의 후손은 황해도 곡산일대에 산다. 77세 기효실의 넷째아들 78세 기탁(倬)의 후손은 황해도 금천군과 지금의 황해북도 토산군 암사동일대에 산다.76세 기한수의 둘째아들 기효임(孝稔)의 후손은 황해도 평산일대에 산다. 76세 기한수의 세째아들 기효근(孝根)의 후손은 황해도 재령일대에 산다.
세번째, 72세 기현의 네째아들 73세 기중제(仲濟)의 후손은 황해도 평산 이나 재령일대에 산다.
네번째, 72세 기현의 다섯째아들 73세 기중수(仲修)의 둘째아들 74세 기임(稔)의 둘째아들 75세 기려도(慮道)의 후손은 경남 김해,창원일대에 산다. 73세 기중수의 세째아들 74세 기책(責)의 5세손 79세 기빙(憑)의 큰아들 80세 기유달(惟達)의 후손은 경기도 파주 교하면, 조리면 일대에 산다. 79세 기빙의 세째 아들 80세 기유직(惟直)의 후손은 경기도 김포군고촌면 지역에 산다.
73세 기중수의 네째아들 74세 기질(質)의 후손은 경남 합천군 초계면, 적중면일대에 산다.
73세 기중수의 다섯째아들 74세 기분(賁)의 현손자 78세 기원길(元吉)의 큰아들 79세 기복성(福成)의 후손은 황해도 재령,평산,상율등에 산다.78세 기원길의 둘째아들 79세 기복량(福良)의 후손은 전남 구례,곡성 죽곡면 반송리일대에 산다.
72세 기현의 동생 원의(元義)의 둘째아들 73세 기덕보(德寶)의 후손은 다른 기록없이 이름만 17세손이 이어졌고 기덕보의 17세손 90세 기봉만(鳳萬)의 묘는 대전에 있으므로 후손은 대전부근에 사는 듯 하다.
200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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